‘봄은 겨울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온다’-막스 피카르트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매우 독특한 영화다. 영화라기보다 한편의 다큐멘터리인데 러닝타임 162분동안 대화라고는 고작 5분을 넘지 않는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침묵으로 가득 채워져있다.
이 영화는 알프스 산맥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한 카트루시오 수도회에 있는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이 수도원의 일상은 미사와 묵상, 식사와 산책, 노동이 전부이다. 그 바탕은 온통 침묵이 채우고 있다.
샤르트뢰즈 수도원은 1688년 현재의 모습으로 지어진 후 단 한번도 일반인에게 내부를 공개한 적이 없단다. 이 영화를 찍은 피터 그뢰뇡 감독은 1984년 촬영허가를 받기위해 방문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16년. 어느날 수도원으로부터 아직도 촬영할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왔다.
수도원이 제시한 촬영조건은 깐깐했다. 인공적인 조명이나 사운드를 쓰지 말것, 수도원의 삶에 대한 논평이나 해설을 하지 말것, 스태프 없이 혼자 찍을 것, 영화의 첫 공개는 영화제에서 할 것 등이었다.
감독은 이같은 제의를 받고 전혀 불만을 갖지 않았다. 애초 자신이 기획했던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이 <위대한 침묵>은 이런 영화다. 이번에 서울을 비롯해 몇몇 대도시에서만 상영된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이렇게라도 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162분간의 침묵. 요즘같은 사회에서 이 영화는 그 자체가 도전이고 기도였다. 3D영화로 더욱더 화려하고 실감나는 비주얼과 영상에 길들어젼 관객들에게 162분의 침묵과 명상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한도전에 가까울 일이기도 했다.
내가 영화를 보러 갔던 날은 몇몇 수녀님들과 카톨릭 신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리를 매꿨다. 예상하면서 보았지만 역시 영화속에서 인간의 소리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눈이 내리는 소리... 그밖에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라 하는 것은 신발 굽소리, 종 소리, 미사할 때 성가부르는 소리, 옷깃을 스치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등이 전부였다. 관객들도 영화보는 내내 이 침묵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애써 숨죽여 보는 듯한 강제성이 아닌, 그 침묵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들어가는 듯한 편안함과 정적이 있었다. 아주 고요하고 평화로운 침묵이었다, 그 흔한 팝콘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휴대폰 벨 울리는 소리도 없었다.
나는 카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이 영화를 매우 감명깊게 보았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우리 불교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수사들의 모습이 스님들과 비슷하였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삭박한 모습이나 가사장삼처럼 길게 늘어뜨린 의복이 그러했다. 그리고 기도와 묵상 도중 수도원 내를 천천히 걸어다니는 산보는 마치 위파싸나 수행중 행선을 보는 듯 했다. 자신의 밥그릇에 담긴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이라든지 채소와 과일 위주의 식사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말 대신에 종 소리로 시간을 시작되고 끝남을 알리는 것도 비슷했다. 장소와 종교만 다를뿐이지 불교의 수행과 많이 닮은 데가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주제는 역시 ‘침묵’이었다. 절집에서도 수행할 때 ‘묵언’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금언이 아닌 묵언이라는 말은 남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 말을 삼가는 행위이다. 말을 하는 대신 그 말을 다시한번 안으로 돌이켜 묵히고 숙성시킴으로써 자신의 영양으로 삼는 수행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는 침묵이 허용되는 관계가 아닐까. 뭔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하고 상대의 의견을 확인해야하는 인간관계는 더 공허하고 허전하게 만들 뿐이다. 법정스님도 ‘텅빈 충만’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이 162분간의 침묵을 견딜 수 있는 현대인이 얼마나 될까. 단 5분도 침묵하기 어려운 세샹이다. 단 10분만이라도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가 참 힘들다. 소리의 홍수속에서 살고있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 소리는 찾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의 내용 자체도 많은 울림을 주지만 이 영화의 제작 뒤이야기 그 자체도 성직자의 구도행과 같은 깊은 숭고함과 울림을 준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이야기는 앞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가장 어려운 점은 이 영화를 스탭없이 혼자 찍어야한다는 점이었다.
감독은 20킬로그램이 넘는 촬영장비들을 일일이 다 직접 옮겨야했다. 그러나 수도원 내의 촬영을 반대했던 수사들은 감독이 무거운 짐을 옮길때 아무 말 없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수도원의 독방에서 기거하며 다른 수사들의 같은 일과속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같이 살지 않으면 그들의 삶의 리듬을 따라갈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영화의 주제상 필요한 리듬 역시 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수도원에 머무는 동안 설거지와 청소 정원일을 도우며 하루 2~3시간씩 짬을 내어 이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영화를 찍기보다는 제 스스로 돌아볼 침묵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했어요.” 이 영화를 찍은 감독의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는 관객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다른때같으면 엔딩곡이 나오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온갖 소음이 흘러나오며 소란스러워지곤 했던 극장이 이날은 끝까지 침묵과 함께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야 관객들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침묵은 집에 오는 길까지 함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