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금여기에서
유투브영상 올리기.. 어머니의 흔적 50년 본문
50년 전 이야기를 찾아 독일 베를린 여행을 햇습니다. 파독 간호원으로 6년동안 독일에서 생활하셧던 내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보았습니다.
노래 불러 녹음해주신 은지님 감사합니다. 독일 베를린 간호사협회 회장님 감사합니다. 베를린에 거주하시면서 저희를 맞아주셧던 저희 어머니의 오래된 친구 '허'여사님과 남편분께 감사드립니다.
https://youtu.be/-bi7adFIjaQ?si=3jY4YMrJthH4n6K4
chapter 1 +++ 시작하면서
오늘 영상은 지난 여름에 다녀온 독일 베를린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어릴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시절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야 햇던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6년동안 나는 어머니와 떨어져서 지냈습니다.
내 어머니는 파독간호원으로 1969년 독일로 가셧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남동생 초등학교 2학년, 여동생은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습니다. 2남1녀 어린아이들을 두고 독일로 떠나셨던 내 어머니는 다른 많은 파독 간호원, 파독 광부들처럼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독일행을 선택햇다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나이로는 34살에 가셔서 40세가 되어 돌아오셨습니다. 당신 인생에서 한창때이셨 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독일에서 2job, 3job을 뛰면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꽤 많은 돈을 모으셨고 그돈을 한국에 송금하면서 앞으로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꿈꾸셧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여생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유쾌하고 씩씩하셨던 어머니 ‘봉’여사는 이제 90살 노인이 되셧습니다. 이제는 치매로 착한 어린아이가 되셨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한국 요양원에서 잘 지내고 계십니다.
내 어렸을적 그리고 독일 베를린을 생각하면 항상 허’여사라는 어머니 절친이 떠올려집니다. ‘허’여사님과 절친이 되었던 이유는 ‘허’여사님 역시 어린 자녀와 남편을 두고 오셨기 때문이었다 했습니다. 독일 간호원 계약기간이 끝났을때 어머니는 자녀와 남편곁으로 영구귀국을 선택하셨습니다. 반면에 ‘허’여사님은 독일에 남기로 하고 한국에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독일로 이주 시켰습니다.
살면서 가끔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한국으로 영구귀국하는 대신에 저희를 독일로 이주시켜서 교육받게 햇으면 저희가족에게는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되었을까라는 상상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어렸을적부터 독일에 있는 베를린은 어머니가 사시는곳, 어머니가 사셨던곳, 어쩌면 내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도시라고 생각하는 도시였습니다. 언젠가는 어머니와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노인이 되어가면서부터는 나 혼자라도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습니다. 생각이 깊으면 이루어진다고 그랬지요.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베를린을 실제로 가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오늘 영상은 지난 여름 자녀들과 함께 베를린 여행을 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chapter 2 +++ 소중한 인연들
독일 베를린 방문을 결정하기까지 큰 도움을 주신 몇분이 있습니다. 베를린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그분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드립니다.
처음은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은지님입니다. 은지님과는 노무현의 서재 독서모임에서 만났습니다. 어느날 모임중에 내 어머니의 파독간호원 시절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었는데 은지님이 큰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베를린에 갈 계획이 있는데 주소를 주면 찾아가서 사진을 찍어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독일에 계실 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전하고 싶은 마음과 우리들의 근황을 카세트테잎에 녹음해서 서로 교환하셨습니다. 그시절 만들어진 카세트테잎 라벨에는 어머니 병원 주소가 선명하게 적혀져 있습니다. 이 주소를 은지님께 드렸지요.
은지님이 알아보니 동서독 통일이 된뒤로 베를린 주소체계가 바뀌었다 했습니다. 그래도 옛 주소를 갖고 물어 물어 어머니가 근무했을것으로 추정되는 병원을 찾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베를린 파독 간호원협회 회장님을 알게 되었고 협회장님 도움으로 어머니의 절친 ‘허’여사님의 사시는 곳 주소까지 확인했다면서 연락처를 보내주었습니다.
2023년 1월, 마침 한국 방문중에 잇던 나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가 독일로 국제전화를 걸었습니다. ‘허’여사님과 내 어머니 ‘봉’여사가 서로 통화하실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벌써 50년도 전의 인연이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꿈 같은 일을 두분에게 경험할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나에게는 35살 딸과 30살 아들이 있습니다. 내 자녀들은 ‘봉’여사인 할머니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내 어머니 ‘봉’여사를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잇습니다. 은지님의 도움으로 ‘허’여사와 ‘봉’여사가 통화하는 과정을 지켜본 딸이 아빠의 독일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독일 베를린 방문은 아빠가 풀어야할 숙제라면서 베를린행 비행기 티켓팅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2023년 5월 독일 베를린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chapter 3 +++ 베를린에서
지난 2023년 5월 7박 8일 일정으로 베를린에 갔습니다. 베를린은 서울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의 화려함 대신, 오래된것들이 아직까지 멋스럽게 남아있는 도시였습니다.
지하철도 아주 오래된 모습 그대로인듯 했습니다. 거리풍경도 오래된 건물이 많았고, 사람들도 검소한 복장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어머니가 6년동안 출퇴근하면서 바라보고 이용하던 풍경이라고 생각하니 문득 문득 콧등이 시큰했습니다.
맨 먼저 ‘허’여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동행한 자녀들과, 스웨덴으로부터 날아와준 은지님과 함께 방문했습니다. 조용하고 옛스러운 아파트 단지에서 남편분과 두분이서 지내고 계셨습니다. ‘허’여사님은 오래전 한국방문하셧을 때 한국에서 뵈었던 분이기도 합니다. 지난 1월 어머니와 통화 연결하면서 인사드렸었기에 반갑게 다시 인사했습니다. 손수 끓여 내주시는 커피와 티, 그리고 포도주를 한잔씩 마시면서 50년전 이야기를 여쭙고 들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허’여사님과 내 어머니가 베를린에서 같은 병원, 같은 병동에서6년을 같이 지내셧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 병동이 어디였는지 확인하고 마침내는 어머니가 근무하던 병동까지 갈수 있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하루 하루, 그리고 일년 일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 들었습니다.
‘허’여사님을 찾게 해준 파독 간호원협회 회장님도 만나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베를린에서 열리는 음악회 티켓을 구해서 같이 관람했습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50년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초창기 파독 간호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와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파독 간호원으로 독일에 왔으나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독일에 남으신 파독 간호원협회의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 들었습니다. 용기있고 다부진 한국의 여성들,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갖고잇던 어머니 사진들을 한장 한장 짚어가며 어머니가 어디서 사진 찍었는지 확인했습니다. ‘허’여사님과 파독 간호원협회 이영우 회장님의 오래된 기억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진을 스캔하면 가장 비슷한 위치를 안내해주는 Google의 서치 app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어머니가 일했던 병동과 사진속에서만 보았던 베를린 여러곳에 직접 서볼수 잇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 젊은 어머니를 만나고 느낄수 잇었습니다.
chapter 4 ++++ 어머니와의 만남
- 어머니가 일하시던 병원입니다. ‘Charité 독일 심장 센터’ 병원인데 생각보다 큰 병원이었습니다. 새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서 정작으로 어머니가 일했다는 결핵병동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옛날 건물을 부수고 새건물을 지었나 보다 생각하면서 거의 포기 하기 직전이었는데, 거짓말처럼 사진속 장소를 발견햇습니다. 그때 그 철제 난간, 그리고 그때 그 창문틀을 확인하면서 먹먹한 기분이 들더군요. 한참 병동주변을 서성였습니다. 근무는 1층에서 했고, 생활은 옥상쪽 기숙사에서 했다고 했습니다.
- 근무하시던 병원을 배경으로 찍은 뒷모습 사진입니다. 나무들이 무성해서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어머니가 사진 찍혔던 정확한 자리를 가늠할수 있었습니다. 그때 신호등, 나무들, 도로의 블록들이 사진속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그때 들렸을 소리, 냄새도 맡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 이곳이 어딜까 항상 생각했던 곳입니다. 근무하시던 병원에서 바로 앞쪽에 있었습니다. Parenthetical eyes라는 작품이 그려진 old Max Beckmann Hall이라는 건물입니다. 60년전 벽화 작품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건물입니다. 독일의 힘이 이런것일까요.
- 옛 베를린 공항 상징 타워랍니다. 어디론가 여행도 다니셨겠지요. 공항에서 찍은 여러장의 사진속 바로 그자리에 서 봤습니다.
- 어머니가 서있던 공항근처 공원을 찾았습니다. 그때 그 나무가 그대로 서있는 것을 봤습니다. 50년동안 많이 자랐지만 그때 그 줄기 그대로인 나무를 보면서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습니다.
- 베를린시 번화가인 쿠담 거리에 있는 빌헬름황제 기념교회앞에서 찍은 어머니 사진입니다. 어머니가 찍었던 자리가 이쯤일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도 그자리에 서봣습니다. 분주한 거리에 어머니가 느껴졌습니다. 어머니가 들었을 거리의 소음이 들렸습니다.
- 동물원에 갔습니다. 마침 소풍나온 어린아이들이 눈에 띄였습니다. 어머니도 동물원에 구경나온 어린이들을 보면서 저희를 생각하셨겠지요. 50년전 동물원 조형물 모양새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입니다. 툭 트인 광장이었지만 단번에 어머니가 사진 찍었던곳을 찾아갈수 있었습니다. 그때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 정말로 여기가 어딘지 궁금했습니다. 구글에 물어봤더니 답을 해주더군요. 베를린 전승기념탑 옆, 비스마르크 동상 뒷편 부조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부산한곳을 피해, 부조물 뒷쪽에서 조용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 역시 구글 앺이 찾아준 장소입니다. Kongresshalle이라는 컨서트홀 건물앞입니다. 어머니와 ‘허’여사님, 그리고 다른 한분과 콘서트게 갔다가 돌아 가시는 길이었겟지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시내로부터 1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Lake Tegel공원을 찾아갔습니다.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서계셧던곳의 백조는 지금도 한가롭게 노닐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시는 와중에도 한번씩은 바람을 쏘이셨던거겟지요. 찰랑거리는 호수 물소리들 들으면서 마치 어머니와 함께 손잡고 있는 것 같은 따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chapter 5 ++++ 여행후기
이번 여행에서 놀라웠던 경험 한가지 소개합니다. 딸아이와 동행하면서 느꼈던 감정입니다. 어머니가 일하던때 어머니 나이가 35살 즈음이엇는데 이번 베를린 방문때 동행햇던 내 딸 나이가 35살입니다. 딸을 바라보면 50년전 35살인 내 어머니를 보는것같은 느낌이 들어지곤 햇습니다. 내 딸과 50년전 어머니가 겹쳐보이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내가 실제로 35살 어머니와 같이 걷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빠와 같이해준 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 여행을 위해 애써주신 스웨덴 은지님, 베를린 간호협회 이영우 회장님, ‘허’여사님과 남편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제가 가보고 싶었던곳에 서 볼수 있었습니다. 숙제처럼 남아있던 베를린 방문을 멋지게 마무리할수 잇었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건강하시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다시 만나볼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제 한국에 다시 나가 어머니를 찾아가 뵈어야겠습니다. 베를린에 가서 ‘허’여사님도 만나고, 어머니 근무하던 병동도 둘러보고 왔노라 말씀드리겠습니다. 베를린 시절 어머니 참 애쓰셧다고 말해 드려야 겟습니다. 어머니 그때 애쓰셨어요. 그리고 어머니 그동안도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봉’여사님 최고예요. 이제 걱정은 모두 내려 놓으시고요. 편안하게 좋게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 드리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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